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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이야기

최정 / 모모 2010. 12. 2. 12:22

  노을 이야기

 

 

  '노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참 많다. 언제부터 노을의 아름다움에 빠졌을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전혜린의 산문집을 읽은 후부터였던 것 같다.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광경이 아름다와서였다. ... 아무 이유도 없었다.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었고 그것은 아늑하고 따스한 기분이었다...."

   -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민서출판사, 1989) 중에서 -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이 구절이 강렬하게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 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 수 있을 정도로 생에 대한 뜨거움을 느껴보고 싶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밤 늦게야 하숙집에 들어오는 생활이었으니, 해 지기 전에 돌아오는 토요일은 참으로 작은 행복감을 느끼는 날이었다. 날이 맑은 토요일이면 노을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붉게 부서지는 노을빛에 잠겨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빨간 펜으로 눌러 쓴 ‘인내’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책상 앞에 붙어있던 고1 하숙방은 도심에 물드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 최정의 <방들에 대한 맹세> 중에서 -  그래서  <방들에 대한 맹세>의 첫 구절이 이렇게 쓰여졌나 보다.

 

  대학 시절에도 괜히 마음이 허전한 날이면 노을을 보겠다고 월미도에 가곤 했다. 해가 떠오를 때보다 어둠 속으로 가는 해는 더 강렬하게 붉어진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태우려는 것처럼. 부끄러운 첫시집을 내면서 여는 시로 노을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을까?

           

        저녁마다 타오르는

        노을의 붉은 심장을

        훔치고 싶었다.

        왜,

        어둠과 만나야

        아름다워지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 최정의 <서시> 중에서 -

 

   변산반도 채석강 노을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고 훌쩍 떠났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채석강까지는 갔는데 하염없이 앉아서 청승맞게 노을 질때까지 앉아 있을 자신이 없었나 보다. 그 길로 선운사로 가서 산 아래서 처음으로 혼자 1박을 한 첫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이때 처음 혼자 다니는 여행의 맛을 알아서 여기저기 많이 돌아 다녔는데, 지금은 혼자 훌쩍 어딘가로 떠날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겁도 많아지는 게 틀림없나 보다.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노을이 언제 지는지 까막득하게 잊고 살게 된다. 나도 그랬다. 도심에서는 노을이든, 별빛이든, 달빛이든 다 잊게 만든다. 참 슬픈 일이다. 올 봄, 실로 수 년만에  순전히 노을을 보겠다고 월미도에 갔다.

2010년 3월 봄날 저녁 6:20

 

2010년 3월 봄날 저녁 6:29

 

2010년 3월 봄날 저녁 6:37

 

2010년 3월 봄날 저녁 6:42

 

 그냥 앉아서 노을을 기다리고,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고 하면서 일교차가 큰 3월에 몸이 꽁꽁 얼어서 돌아왔다. 해가 질때의 빛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매일매일 다르다. 어제의 해는 이미 오늘의 해는 아니니까. 지구가 온 힘을 다해 한 바퀴 돌았겠을 거이다. 해는 늘 뜨고 지고 있었는데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온 힘을 쏟아 도대체 무엇을 향해 나아갔던 것일까?

 

 이 봄날을 계기로 2년 반만에 시를 다시 쓰게 되었다. 아마 고등학교 때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바라보던 노을이 아마 내게는 詩였나 보다.

 

                          ...

 

          그래, 산다는 건 아픈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것도

          차갑게 식어가는 것도

          다 사는 것이다

          아프니까 살아있는 거다       - 최정의 <노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