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읽기/좋은시 읽기

문부식 '눈 내리는 겨울밤에 쓴 마지막 시'

최정 / 모모 2010. 12. 1. 19:34

눈 내리는 겨울밤에 쓴 마지막 시

 

 

                                   문부식

 

 

 

 

이 눈 밟고 가게 될 것인가

 

저기 낮은 담을 돌아

사형장으로 가는 길 위로

눈이 내린다

 

어둠 속에서

지금 눈을 맞고 선 헐벗은 나무들

그 옆을 지나 사형장이 보이면

대개 반은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지

 

철문이 열리고

잠시 머물던 독방을 나와 사형장까지

그 몸서리치게 짧은 길을

과연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걷게 될 것인가

 

스물 몇 해의

짧은 나의 삶이

눈 위에 남겨졌다 이내 사라질

몇 개의 흐린 발자국 같은 것일지라도

 

끝내 저버릴 수 없는

우리들의 설운 사랑을 떠올리며

되돌아갈 수 없는 눈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이 눈 밟고 가게 될 것인가

 

스물 몇 해의

나의 삶처럼 짧은 길 위로

지금 눈이 내린다

 

 

 

 

 

문부식의 <꽃들>(푸른숲, 199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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