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밤에 쓴 마지막 시
문부식
이 눈 밟고 가게 될 것인가
저기 낮은 담을 돌아
사형장으로 가는 길 위로
눈이 내린다
어둠 속에서
지금 눈을 맞고 선 헐벗은 나무들
그 옆을 지나 사형장이 보이면
대개 반은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지
철문이 열리고
잠시 머물던 독방을 나와 사형장까지
그 몸서리치게 짧은 길을
과연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걷게 될 것인가
스물 몇 해의
짧은 나의 삶이
눈 위에 남겨졌다 이내 사라질
몇 개의 흐린 발자국 같은 것일지라도
끝내 저버릴 수 없는
우리들의 설운 사랑을 떠올리며
되돌아갈 수 없는 눈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이 눈 밟고 가게 될 것인가
스물 몇 해의
나의 삶처럼 짧은 길 위로
지금 눈이 내린다
문부식의 <꽃들>(푸른숲, 199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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