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귀농 첫해 농사 배우기(2012년)

샘 공사, 열흘 간 물이 끊기니...

최정 / 모모 2012. 4. 12. 21:16

 

해발 700여 미터 산 아래 살다 보니 마실 물 걱정은 없었다.

산 아래서 흘러 나오는 샘물이 어찌나 달고 차가운지 다들 물맛이 좋다고 칭찬 일색이다.

수량도 풍부하여 맘껏 써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새벽에 봄에는 어울리지 않는 집중호우가 미친듯이 지나가고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샘 공사를 한 지 20년이 넘어서 그런지 지붕도 무너지고 해서

낙엽에 곧잘 양수기 호수 끝이 막히곤 했는데 아마 이번에도 그러려니...

근데 청소를 해도 물이 안 나온다.

간밤 집중호우에 양수기가 잠겼나 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아 그럼, 아무래도 수량 부족? 샘이 낮아졌으니 샘을 더 파고

이참에 아주 샘 지붕 공사를 다시 하자 계획을 하게 되었다.

 

물이 없으니 모든 게 비상이다. 빨래도 밀리고, 씻는 것도 제한적이고...

겨우 옆집 아저씨에 지하 수도에 호수를 연결해서 물을 받아 썼다.

 

 

 

드디어 샘 공사 시작, 무너진 지붕을 뜯어 내고 샘을 더 파냈다.

 

 

 

이런! 맑았던 날인데 갑자기 눈이 쏟아진다.

 

 

 

눈을 맞으며 샘을 파내고...

 

 

 

샘이 깊지는 않지만 물줄기가 측면 위쪽 두세 군데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와 수량이 풍부하다.

이곳은 제일 꼭대기 골짜기라서 그야말로 약수물이다.

 

 

 

눈발이 거세져서 잠시 눈을 피해 집으로 들어왔다.

 

 

 

물을 받아 놓고 쓰던 중,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나는 주전자에 고로쇠물을 받아다 놓고, "이 주전자에 있는 게 고로쇠 물이예요--"

(똑같은 주전자가 2개가 있었으니...)

이렇게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를 해 주었건만

그새 깜빡 잊고 나는 그만 저녁 설거지에 고로쇠 물 주전자를 다 부어 주었다.

한 7리터 정도? 다 부어주고 나서야, 아차, 고로쇠 물이었다는 걸 깨달았으니!

그냥 물이 담긴 주전자와 순간적으로 헛갈렸다.

다들 빵 터졌다. 고로쇠 물로 설거지 하는 집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샘 지붕에 올릴 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르고...

 

 

 

어떻게 지붕을 올릴까 고민을 하고...

 

 

 

지붕 틀을 완성해 가고 못질을 한다.

 

 

 

지붕에 합판을 대니 대강 모양이 갖추어 졌다.

 

 

 

눈발이 날리던 하늘이었는데 밤에는 구름 사이로 달이 나왔다.

이날은 음력 3월 16일로 달이 가장 둥글고 환한 날이다.

 

 

 

어제에 이어 남은 공사를 했다. 지붕에 마저 합판을 대고...

 

 

 

맑은 날씨이다. 샘이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어 간다.

 

 

 

옆면도 합판을 대고 일단 천막을 덮어 두었다. 나중에 겨울도 견디게 더 추가적인 손질을 해야 한다.

샘 청소 다시 마무리 하고 깨끗한 자갈을 주워다가 흙물이 안 올라오게 깔아 두었다.

 

 

 

모두 힘을 모아 샘 공사를 마쳤다.

다들 오늘부터는 깨끗한 물이 펑펑 나오려니 하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 근데 아니다!

양수기를 돌리자 급속하게 샘물이 말라 버린다. 아니 그럼, 수량 부족?

20년 넘게 늘 풍부하게 물이 나왔다는 이 샘이 왜 갑자기 마르게 된 걸까?

온갖 추측이 나왔다. 겨울 동안 물길이 바뀌었다?

갑작스런 집중호우에 물길이 막혔다? 지하 물길에 물이 말랐다?

더 깊이 샘을 파기로 하고 아쉽게도 샘 공사는 일단락이 됐다.

아, 열심히 샘을 파고 지붕 공사를 했건만 물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물이 안 나온지 6일째이다. 샘을 더 파보기로 한 날.

샘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이 생각, 저 생각...

분명 공사 전 더 앝은 상태일 때도 수량은 부족하지 않았다.

갑자기 수도 배관 문제를 생각해 냈다.

오래 되어서 또는 얼었다 녹으면서 배관이 낡아 터진 게 틀림 없을 거라는 추측이 들었다.

계곡에 양수기를 대고 계속 물을 퍼서 수도에 연결을 했나 본데

역시 집에 물은 안 나온다. 계속 돌려 보자 집 뒤편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곳이 포착됐다.

아 이런! 추측이 맞았건만 난감한 일이다.

땅을 파야 하고 배관을 갈아야 하고...

 

 

 

 

갈라져 터진 배관을 잘라 내었다.

 

 

 

아침에 보니 이미 '농사 폐인' 씨가 혼자서 터진 배관을 들어 올렸다.

원래는 엄청나게 깊이 묻힌 배관이지만 터진 곳은 해 얕게 묻힌 곳이었다.

나는 도시의 수도 배관을 떠올리며 엄청난 공사가 될 줄 알았는데

삽으로, 괭이로 땅을 엄청 파대는 상상을 했었다.

비교적 간단하게 배관을 잘라내고 재료를 사다가 설치를 하는 것을 지켜 봤다.

아, 드디어 물이 펑펑 나온다. 정확히 열흘만에 샘물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맑고 깨끗한 옹달샘의 물이 펑펑 쏟아진다. 기분이 좋다!

 

 

 

꼭 뭔가 없고 부족해야 소중함을 아는 게 바로 한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인가 보다.

이 참에 샘 청소까지 깔끔하게 마쳤으니 앞으로 물맛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

풍부하고 맛있는 물을 주는 산에게, 나무에게, 흙에게, 공기에게, 온갖 미생물에게 감사하며!

이 참에 여럿이 모여 공사하는 즐거움도 맛 보았으니 그것으로 됐다.

힘을 합치면 뭐든 우리 손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