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준비 시절/귀농 첫해 농사 배우기(2012년)

산골에서 열린 시농제

최정 / 모모 2012. 5. 14. 21:57

 

시농제 상차림 - 돼지머리, 시루떡, 감자, 산나물, 쌈채소, 전, 황태포, 사과, 배, 담근 막걸리, 초

 

 

 

귀농 후 집들이겸 손님들을 초청하자고 얘기가 나온 김에

농장 식구들 모두 시농제를 해 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농사짓는 소박한 마음을 모아 보기로 한 것이다. 잔치도 열고...

 

이리하여 한 차례 모든 작물을 다 심어 놓고 시간 여유가 생겼을 때

날 맑은 주말, 산골에서 시농제가 열렸다.

아침부터 산나물을 뜯어 오고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거르고 떡을 찾아 오고...

 

 

 

 

마당가에 조팝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날이었다.

 

 

 

 

복사꽃도 피어 한층 흥을 돋우고

 

 

 

 

우리 농장의 대표격인 '농사 폐인(? ^^)"씨가 먼저 절을 하시며 시농제를 시작했다.

 

 

 

 

돌쑥 샘이 절을 하고 축문을 낭독해 주셨다.

 

 

 

 

돌쑥 샘의 명문장, 명필로 써진 시농제 축문

 

 

 

시농제始農祭 축문祝文

 

어느덧[維] 세월이 흘러[歲次]

壬辰년 윤삼월 (閏 乙巳월) 癸酉일

모든 것이 흔들리고 울리는 때

 

이제[朔]

조선 땅 강원도 ○○군 ○○면 ○○○ ○○농장에

하늘땅[天地] 해달별[日月星辰]을 우러르고 섬겨 농사짓는 사람들과 길동무들이 함께 모여,

하늘땅의 정령님[鬼神], 솔무치 터줏대감님, 밭에 깃들어 사시는 벌레님 미생물님들 앞에

삼가 별을 곡진하게 우러르며[農]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마음을 받들어 올리옵니다.

 

하늘땅이 사귀고[交流] 기氣와 운運이 감응感應하니

생장수장生長收藏이 있고 원형리정元亨利貞이 이어 모이고 통[會通]하옵니다.

 

나락 한 알에 우주가 들어 있고 밥 한 그릇에 천지인天地人이 깃들어 있으니

푸성귀 한 포기에 하늘과 땅, 세상과 이웃, 아이들의 건강과 평화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가렵니다.

 

하늘땅의 기운과 소리[五音: 律呂], 색깔[五色]의 파동波動에 더불어 울리[共鳴]니

지금 여기 세상의 배고픔 슬픔 아픔 어지러움에 함께 흔들리고 떨리며 살림해 나아가옵니다.

 

농사는 농부가 짓는다 하나 천지신명의 깊고 그윽한[幽玄] 품을 벗어나지 못하오니

쟁기질하는 손길과 침뜸하는 손길이 음양오행의 섭리를 따라 귀의歸依하옵니다.

 

하늘땅의 정기精氣 바람물[風水]이 어버이이시며 풀 꽃 나무 나비 벌 미생물이 형제이웃이오니

모든 관계를 돌아보고 스스로 살리고 스스로 가꾸며 스스로 어루만지는 살림,

사랑과 정과 환대를 나누며 사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가난한 순환의 삶, 오래된 오늘로 돌아가옵니다.

 

부디 자축거리고(彳) 앙감질하며(亍) 가는 길을 굽어보고 살펴 주시옵기를 소망하옵니다.

모자라지만 당신의 정기에서 받은 것들로 마음과 뜻을 다해 마련한 술과 음식이오니 흠향歆饗하시옵소서[尙饗].

 

 

주석)

* 농農 : 굽을 곡曲 별 진辰으로 별을 곡진하게 우러러 보는 마음이 농사를 짓는 마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농사는 천지인天地人[천문天文 지리地理 인사人事] 삼재三才를 두루 살피는 철학이요 삶의 예술이라는 뜻이 녹아 있습니다.

 

* 생장수장生長收藏 원형이정元亨利貞 : 나고 자라고 거두고 저장하고.

읽고 공부하는 이의 입장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하지만, 하늘, 우주의 율동에 따라 봄여름가을겨울春夏秋冬의 변화가

이루어지듯이 자연의 순환의 섭리에 감응하는 우주의 질서라는 의미입니다. 인예의지仁禮義智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습니다.

 

* 자축거리고(척彳) 앙감질하며(촉亍) : 갈 행行자를 풀어 쓴 것입니다.

자축거림은 절뚝거림이요, 앙감질은 한 쪽 발로 깽깽이 뛰기를 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우주의 기의 운동변화가 불균형하고 불완전하게 진행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불균형 가운데 상대적 균형을 꾀했던 할머니 대지의 사유관이 들어 있습니다.

 

 

 

 

축문을 태우고

 

 

뒤이어 농장 식구들의 절이 이어졌다.

내가 절을 하는 바람에 사진이 없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얻더 나중에 올려볼 참이다.

 

 

 

 

차로 거리가 꽤 되지만 같은 산골에 사는 이웃분들

 

 

 

 

먼 길 오신 손님들

 

 

 

 

인천에서도 오시고

 

 

 

 

서울에서도 오시고

 

 

 

 

마무리를 하며 땅과 하늘의 모든 정령들에게 음식을 바치고

 

 

 

 

기원제를 마치고 낮부터 새벽까지 잔치가 벌어졌다. 돼지머리를 삶고...,

손님들이 사오신 음식들이 넘쳤다. 회, 낙지, 사케, 술, 빵, 쌈, 김치, 포...

 

 

 

 

산골에서 회와 낙지까지...

 

 

 

 

우리가 준비한 나물들 - 각종 취나물, 두릅순, 엄나무순, 우산 나물, 다래순, 쑥, 미나리, 시금치 등등

 

 

 

 

산나물전 - 크아, 살아 있는 나물맛

 

 

 

 

돌쑥 샘의 글씨 선물을 받고 기뻐하시는 인제 아저씨

 

 

 

 

밤은 깊어가고 웃음은 넘쳐 나고...

장구, 북, 꽹과리가 울리고 탈춤도 추고..., 밤새 몇 번이나 들은 판소리 '쑥대머리'

목도 안 쉬고 창을 하신 손님...

 

많은 양의 담근 막걸리, 족히 8리터는 돼 보이던 사케, 돌배주

도수가 꽤 높아진 마가목주...

다 어디갔나? 아침에 보니 빈병들만...^^

한 판 신나게 논 흔적이 역력하다.

한 판 신나게 놀고 날이 밝으니 다들 침뜸으로 피곤함을 풀어야 했다.

 

 

 

 

때를 맞추어 귀농 선물로 받은 돌쑥 샘의 글씨가 도착했다.

표구를 하고 한참이나 늦어져서 산골에 도착을 한 것.

방이 훤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시농제를 마친 다음 날 왕조팝나무에 꽃이 더 활짝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