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수
어머니
최 정
우물가 앵두나무 가지로 달 오르면
물 한 사발 장독대에 올리고 합장하는 아낙네
지발 빌어유, 지아비 무사혀두룩 보살펴 주셔유
다 자란 곡식 두고 눈물로 떠난 피난길
남편은 낯선 군인들에게 끌려가고
가뭄처럼 젖 말라 바락바락 악 쓰던 첫아들
보리물만 먹다 백일 못 넘기고 울음 그쳤다
근심처럼 잡초 무성한 마당에
빨간 완장도 노란 머리도
검둥이도 왔다 갔는데
몇 번 계절 바뀌어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아니어유, 지아비는 꼭 살아 올거구만유
총알 터지는 소리 가르며 지켜낸 물 한 사발
합장한 아낙네의 손끝을 향해 남편은
물오른 앵두나무를 휘청휘청 넘어오고 있었다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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