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넝쿨
최 정
홈통 친친 감으며
삼층 벽돌집 기어오르는 호박 넝쿨
노오란 꽃 열병처럼 내밀고
장마 속에서 용케
여린 새순이 먼저 길 더듬어 간다
아득한 저 곳에서 어떻게 열매 맺을까
이십대는 언제나 아득했다
사랑도
혁명도
시도
곧 폭염이었다
나는 식욕도 없이
잔뜩 엉킨 넝쿨이 되어
언어에 빗장을 질렀다
우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모른다
태풍이 북상한다, 는 소식을 듣고
아예 기진해 돌아오는 저녁
지독히 말라 내려앉은 호박 넝쿨
갑자기, 몹시 태풍이 기다려졌다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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