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시 - 최정/대학 시절 시(1992-1996)

호박 넝쿨

최정 / 모모 2010. 12. 4. 13:17

 

호박 넝쿨

 

                           최 정

 

 

홈통 친친 감으며

삼층 벽돌집 기어오르는 호박 넝쿨

노오란 꽃 열병처럼 내밀고

장마 속에서 용케

여린 새순이 먼저 길 더듬어 간다

아득한 저 곳에서 어떻게 열매 맺을까

이십대는 언제나 아득했다

사랑도

혁명도

시도

곧 폭염이었다

나는 식욕도 없이

잔뜩 엉킨 넝쿨이 되어

언어에 빗장을 질렀다

우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모른다

태풍이 북상한다, 는 소식을 듣고

아예 기진해 돌아오는 저녁

지독히 말라 내려앉은 호박 넝쿨

갑자기, 몹시 태풍이 기다려졌다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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