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섭 '섬' 섬 이홍섭 바다가 기르는 상처 만약 저 드넓은 바다에 섬이 없다면 다른 그 무엇이 있어 이 세상과 내통할 수 있을까 이홍섭의 <강릉, 프라하, 함흥>(문학동네, 1998) 중에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9
권선희 '북어의 노래' 북어의 노래 권선희 낯선 동지와 서로 입을 꿰고 한 줄에 걸렸다 내장은 모두 발라내고 영롱한 의식은 바다에 남겨두고 헛것인 몸뚱이만 펄럭인다 동해 비릿한 바람이 불어오면 올수록 나는 나를 잃어야 한다 꾸득꾸득 말려드는 안타까운 삶 우두커니 밤바닷가에서 눈알도 없는 내가 안주로 국거리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9
기형도 '진눈깨비' 진눈깨비 기형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8
신경림 '눈' 눈 신경림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 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8
대설 대설大雪 최 정 막걸리 잔이 몇 순배 돌아가고 눈이 날린다 눈처럼 축축해진 몸을 끌고 들어와 포근한 이불 속에 파묻는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날린다 이불깃을 얼굴까지 끌어올리자 잠이 눈처럼 쏟아진다 죽음도 이렇게 노곤한 잠처럼 찾아와 준다면 참 따스할 텐데 창밖에는 밤이 새..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2.08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7
우물 우물 최 정 어둠이 물감처럼 풀어진 우물이 있었다 아이가 퍼 올리고 퍼 올리는 커다란 두레박에는 어둠이 가득 했다 함께 살던 돼지가 목을 따인 채 우물 옆에서 붉은 피를 콸콸 쏟아냈다 우물에는 늘 이끼가 푸르렀다 아이도 이끼처럼 빨리 자랐다 어둠을 퍼 올리고 퍼 올리면 언젠가 ..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2.06
감시의 눈 감시의 눈 최 정 초저녁부터 반짝이는 별이 있어 눈 마주치며 설레었는데 혼자 빛나는 저 별이 인공위성이라 한다 침실의 은밀한 속살까지 훔쳐보는 외눈박이 눈빛이었다 한다 원형 감옥 같은 지구에서 이제 숨을 곳은 어디인가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2.06
이원 '2050년/시인 목록' 2050년/시인 목록 이원 사이보그 001: 서정시를 옹호하는 캐릭터. 권력 실세. 전속 로봇이 베스트셀러용 시의 최종 점검을 늘 맡아주고 있다 사이보그 002: 다장르 겸업을 하고 있어 일명 전투용 사이보그로 불린다. 뇌 개조 수술을 받은 최고의 전자 두뇌. 다혈질이나 예술적 안목이 탁월하다. 평소에는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6
브레이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이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이트 시집,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