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눈 달의 눈 최 정 뒤척이다 눈부셔 깨어 보니 작은 창 가운데 달이 커다랗게 눈을 뜨고 있다 환한 정적 창을 다 지날 때까지 홀린 듯 달과 눈빛을 주고받는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2.05.21
산골의 하루 산골의 하루 최 정 찬 기운 털고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배추 된장국에 밥 한 술 뜨고 개밥 고양이밥 주고 봄 햇살에 잔설 녹는 소리 들리는 오늘은 춘분 웅크렸던 몸 햇살에 말리며 땔 나무 주워 모으다 고로쇠물 한 사발 들이켜니 내 몸도 고로쇠나무처럼 땅속 깊숙이 뿌리를 뻗을..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2.03.23
도종환 '발자국' 발자국 도종환 발자국 아, 저 발자국 저렇게 푹푹 파이는 발자국을 남기며 나를 지나간 사람이 있었지 도종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2011) 중에서 * 저자소개 : 도종환 -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4
유홍준 '버드나무집 女子' 버드나무집 女子 유홍준 버드나무 같다고 했다 어탕국숫집 그 여자, 아무데나 푹 꽂아놓아도 사는 버드나무 같다고…… 노을강변에 솥을 걸고 어탕국수를 끓이는 여자를, 김이 올라와서 눈이 매워서 고개를 반쯤 뒤로 빼고 시래기를 휘젓는 여자를, 그릇그릇 매운탕을 퍼담는 여..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3
권지숙 '밤길' 밤길 권지숙 반달이 희미하게 비춰주는 산길을 엄마와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엄마는 말하지 않고 나도 묻지 않았다 오일장이 서는 장터 가는 길 내 동무 양순이네 집으로 가는 길 너무도 익숙한 그 길을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땀이 배도록 꼭 잡은 채 앞만 보고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2.22
버리고 갈 것만 남아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최 정 냉장고는 고장난지 오래 세탁기는 덜컹덜컹 자주 멈추고 텔레비전 버튼은 잘 눌러지지 않아 다행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언제고 떠나려 새것 사지 않아 다행이다 아니, 사실은 다행이지 않다 쓸 일 없어진 침대도 들춰본 지 오래된 책들도 하다못해 서랍에 ..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2.02.09
막차 막차 최 정 막차, 이 말은 나를 설레게 한다 시외로 가는 차표를 끊곤 했다 여고 2학년 하숙생 시절 낯선 곳을 떠도는 방랑자처럼 나의 설렘은 차창에 부딪치는 바람을 가르며 질주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의 미래가 엉킨 실타래처럼 창밖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하숙집으로..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2.02.06
권정우 '풍경' 풍경 권정우 대웅전 뒷마당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에게 거미가 고운 수의를 한 벌 해 입혔다 허공에 새로 새긴 봉분 앞을 지날 때마다 바람이 경을 읽는다 권정우의《허공에 지은 집》(애지, 2010) 중에서 * 저자 소개 - 권정우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2.01.12
추석 전야 추석 전야 최 정 기울어진 지붕 아래로 쉴 새 없이 빗물이 흘러내립니다. 다 된 형광등처럼 팔순 노모의 기억력이 깜빡깜빡합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깜빡깜빡합니다. 긴 초저녁잠에서 깨어난 노모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이불을 개고 세수를 하고 옷을 단정하게 갈아 입으십..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1.09.14
장유 '시골로 돌아와', '농부의 일' 시골로 돌아와 1 장유 남쪽 산모퉁이에 밭을 일구고 북쪽 산굽이엔 오두막을 지었네. 아침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엔 돌아와서 책을 읽네. 주변에선 나의 고생 비웃겠지만 내게는 더없는 즐거움이라네. 이제야 알겠네, 농사일 배우는 게 벼슬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농부의 일 장유 사람의 마..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