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연가 - 귀를 씻다 산골 연가 - 귀를 씻다 최 정 점심 먹고 쉴 참에 밭으로 이어진 계곡길 따라 걷습니다 물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세상 소식에 피곤해진 귀가 저절로 씻깁니다 스르르 눈이 감겨 수북이 쌓인 낙엽 베고 한숨 자고 싶어집니다 눈도 씻고 손도 씻고 싶었지만 오늘은 귀만 말갛게 씻기로 ..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5
산골 연가 - 한 알의 씨앗 산골 연가 - 한 알의 씨앗 최 정 농사로 먹고 사는 일이 비현실적이 되어 버린 시대에 늦깎이 농부가 되었습니다 한 알의 씨앗을 들고 벌서고 있습니다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5
산골 연가 - 고구마야, 고구마야 산골 연가 - 고구마야, 고구마야 최 정 고구마야, 고구마야 왜 그리 땅속 깊이 들어가기만 하니 어깨 뭉치고 팔 빠져라 호미질 해도 좀처럼 쉽게 꺼내지지 않는구나 옹기종기 깊숙이도 박혀 있구나 고구마야, 고구마야 왜 자꾸 깊이깊이 들어가기만 하는 거니 주문받은 고구마 얼른 보내..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5
산골 연가 - 태풍 산골 연가 - 태풍 최 정 먼 바다에 태풍이 지나 갔다지요 종일 집안에 발 묶여 있을 만큼 매서운 바람 지나고 산골의 아침은 옷깃을 여밉니다 붉고 노란 발자국들이 산기슭까지 내려와 어지럽게 찍혀 있습니다 모든 걸 휩쓸어 갔다지요 우리의 탐욕도 휩쓸어 갔을까요 산골의 아침은 언제..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25
산골 연가 - 세월호 후의 세월 산골 연가 - 세월호 후의 세월 최 정 별을 세지도 않았고 달빛 아래 서 있지도 않았습니다 숲속 산책길은 버림받았습니다 이름 모를 꽃들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굶지도 않았습니다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 먹고 종일 밭에 나가 지치도록 일을 했습니다 감자꽃 지고 호박꽃 지..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10.18
산골 연가 - 지기(知己) 산골 연가 - 지기(知己) 최 정 이십오 년 지기(知己)가 찾아와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난 것처럼 수다를 떤다 여기저기 긁긴 생채기에 딱지가 앉아 새살 오르는 것도 모르고 우린 중년이 되었다 무섭도록 싱그럽던 우리들의 청춘에도 소용돌이 같은 먹먹한 사랑이 지나가고 이젠 애 엄마가 된..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7.18
산골 연가 - 어미 새 산골 연가 - 어미 새 최 정 하우스 작업장 귀퉁이 갈색 가슴털 어미 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갓 부화한 아기 새들이 꼬물꼬물 꼼지락거립니다 감자 수확에 정신없다 와 보니 무려 여섯 마리의 아기 새들이 주둥이를 쫙 벌려 먹이를 재촉합니다 나는 감자 상자 포장하느라 바쁘고 어미 새..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7.02
산골 연가 - 단비 산골 연가 - 단비 최 정 모처럼 단비가 내려 일손을 놓았습니다 설거지도 쌓아두고 마음껏 게으름 피웁니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 마당에 나가 푸른 잎들의 합창 소리를 듣습니다 귀가 싱그러워지다가도 낮게 깔린 구름처럼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와 슬그머니 낮잠 자러 들어옵니다 ..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7.01
산골 연가 - 등불 하나씩 산골 연가 - 등불 하나씩 최 정 마흔이 넘으면 왜소해진 등허리에 외로운 등불 하나씩 켜고 사나 보다 뜬금없이 먼 도시에서 걸려온 대학 선배의 전화 이십 년 넘은 추억 어제 일처럼 이야기한다 그의 등에 켜진 등불이 반짝하고 빛났다가 재빨리 스러진다 모른 척 하기로 한다 어제는 봄..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3.14
산골 연가 - 노송(老松) 산골 연가 - 노송(老松) 최 정 폭설이 할퀴고 간 숲속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어지럽습니다 잔설에 찍힌 노루 발자국 따라가다 아름드리 노송 아래 멈춰 섭니다 한쪽이 부러져 나간 노송의 노란 속살 아래 노루 발자국처럼 서성이다 용기 내어 노송을 안아 봅니다 거친 껍질이 볼에 와 닿습.. # 창작시 - 최정/2013-14년 산골연가(청송) 2014.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