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첫눈 최 정 그대는 알고 있었나요 취중 진담이라도 마음 내보이고 싶어 쉽게 취하지 못하는 술을 자꾸 마시면서 시간은 또 자꾸 가고 취한 사람들 하나 둘씩 집으로 가는데 어느덧 허름한 술집은 여러 번 바뀌어 희뿌옇게 밝아오는 구석진 의자에 앉아 이젠 둘만 남아 더는 넘어가지 않는..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30
귀 잘린 자화상 귀 잘린 자화상 최 정 고흐의 귀는 알고 있었을까 잘려나간 순간, 영원히 기억된 것을 고흐의 영혼이 완성된 것을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30
나희덕 '물소리를 듣다' 물소리를 듣다 나희덕 우리가 싸운 것도 모르고 큰애가 자다 일어나 눈 비비고 화장실 간다 뒤척이던 그가 돌아누운 등을 향해 말한다 당신...... 자?...... 저 소리 좀 들어봐...... 녀석 오줌 누는 소리 좀 들어봐...... 기운차고...... 오래 누고...... 저렇도록 당신이 키웠잖어...... 당신이...... 등과 등 사이..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1.30
이세기 '침' 침 이세기 세상을 어둡게 보아서인가 점자를 읽어내리던 손을 잠시 거두고 침구사는 내게 말한다 화가 머리에 응혈되어 있어 풀어야겠습니다 짚었던 맥을 가만히 놓더니 몸을 지켜야지요 침을 놓는 장님의 손은 천수의 눈을 가졌는지 혈맥을 짚더니 혈자리를 찾아 침을 놓는다 기혈이 뚫릴 때까지 침..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1.30
이세기 '이작행' 이작행 이세기 이작행 완행 철부선 여객실에 베트남에서 왔다는 새색시가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섬사람 몇몇이 그 엄숙한 광경을 신기한 듯 보며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집으로 간다고 한다 집이 어디냐 하니 이작도라고 한다 어디를 다녀가냐고 하니 설 쇠기 위해 시장에 다녀온다며 숙주나..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1.30
정희성 <태백산행> 태백산행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 살이야 열아홉 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1.29
김선태 <조금새끼> 조금새끼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는 때이지요. 모처럼 집에 들어와 쉬면서 할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은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1.29
윤성학 <내외> 내외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오붓한 산길을 조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숨길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1.29
누구나 한번쯤 누구나 한번쯤 최 정 누구나 한번쯤 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은 있다 나도 이제 평균 수명에서 절반쯤 살았다 싱싱하게 튕겨 올라 겁 없이 빛나던 청춘 더 너그러워져야겠다 스스로 빛나지 않아야겠다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29
오체투지 오체투지 최 정 노랗게 떨어진 은행잎 무심코 깔고 앉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렇게 순한 개의 이름이 오체(투지)란다 어쩌자고 주인은 강원도 홍천 산골 낮은 지붕을 지키는 개에게 저리 무거운 이름을 지어준 걸까 두 무릎과 팔꿈치 심지어 이마까지 온전히 땅에 대 본적 없는 이..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