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희 '북어의 노래' 북어의 노래 권선희 낯선 동지와 서로 입을 꿰고 한 줄에 걸렸다 내장은 모두 발라내고 영롱한 의식은 바다에 남겨두고 헛것인 몸뚱이만 펄럭인다 동해 비릿한 바람이 불어오면 올수록 나는 나를 잃어야 한다 꾸득꾸득 말려드는 안타까운 삶 우두커니 밤바닷가에서 눈알도 없는 내가 안주로 국거리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9
기형도 '진눈깨비' 진눈깨비 기형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8
신경림 '눈' 눈 신경림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 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8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7
이원 '2050년/시인 목록' 2050년/시인 목록 이원 사이보그 001: 서정시를 옹호하는 캐릭터. 권력 실세. 전속 로봇이 베스트셀러용 시의 최종 점검을 늘 맡아주고 있다 사이보그 002: 다장르 겸업을 하고 있어 일명 전투용 사이보그로 불린다. 뇌 개조 수술을 받은 최고의 전자 두뇌. 다혈질이나 예술적 안목이 탁월하다. 평소에는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6
브레이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이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이트 시집,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6
아프리카 민요시 배 고프거든 배 고프거든 호미질을 해야지 의사가 아는 유일한 처방이라지 부자와 가난뱅이 나는 부자이지만 언제인가는 죽게 될 거고 너는 가난뱅이이지만 언제인가는 죽게 될 거고 레오나드w. 두브 엮음, <아프리카 민요시집>(실천문학사, 1982) 중에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5
한 줄도 너무 길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 바쇼 -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모리다케- 류시화 엮음, <한 줄도 너무 길다>(이레, 2000) 중에서 하이쿠 시 모음집인데,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형태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압축의 압축미!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4
장석남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장석남 한 덩어리의 밥을 찬물에 꺼서 마시고는 어느 절에서 보내는 저녁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처마 끝의 별도 생계를 잇는 일로 나온 듯 거룩해지고 뒤란 언덕에 보랏빛 싸리꽃들 핀 까닭의 하나쯤은 알 듯도 해요 종소리 그치면 흰 발자국을 내며 개울가로 나가 손 씻..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4
문동만 '청어' 청어 문동만 청어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면 그놈의 오장육부에 잔가시를 박으며 기꺼이 죽어준다고 한다 아무리 힘센 놈이라도 그 잔가시의 껄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부터는 청어를 잡아먹지 않는다 한다 그리하여 나머지 청어들은 안녕하고 가끔 몇몇의 청어는 자진하여 검은 아가리 속으로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