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 '세헤라자데' 세헤라자데 강성은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 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8
박후기 '채송화' 채송화 박후기 1 무너진 집안의 막내인 나는 가난한 어머니가 소파수술비만 구했어도 이 세상에 없는 아이 구석진 울타리 밑에서 흙을 먹으며 놀아도 키가 자라지 않아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2 엄마는 동생을 또 지웠다 여전히 나는 막내다 3 회를 앓는 내 얼굴은 자주 시들었다 태양을 벗어나기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7
이선영 '어느 대낮에 스치는 생의 풍경' 어느 대낮에 스치는 생의 풍경 이선영 때로 트럭에서 떨어져내린 배추 몇포기가 야채장수로 하여금 대로를 무단횡단하는 모험을 감행하게 한다 그냥 갈 수도 있었다 고작 몇푼 안되는 것, 그렇지만 아직 멀리 온 것은 아닌데, 여전히 눈에 밟히는데 무 배추 가득 실은 소형 트럭에는 비상등이 켜져 있..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6
도종환 '어머니의 채소농사' 어머니의 채소농사 도종환 한겨울에도 어머니의 손끝에서는 푸른 싹이 돋는다 반쪼가리 감자가 부엌 모퉁이에서 흙묻은 손을 내밀고 겨울 햇볕 근처로 모인 미나리들이 창 밖으로 푸른 줄기를 흔든다 밭고랑에는 턱밑에 얼음이 박힌 흙더미뿐 살아 있는 것이라곤 없는데 어머니는 정성으로 모아둔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5
민영 '풍경' 풍경 민 영 저기 수양버드나무 아래 노인 하나가 지나간다 팔을 뒤로 돌려 뒷짐을 지고 어설픈 걸음걸이로 허청허청 지나간다 새 한마리 날지 않는 쨍쨍한 대낮! 민영, <방울새에게>(실천문학사, 2007) 중에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4
이기인 '몸살' 몸살 이기인 늦봄과 초여름 사이 찾아온 감기가 좀 나아질 무렵 하루 세 번 챙겨먹은 약봉지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부스럭부스럭 찾아오신 어머니가 감기를 가지고서 고구마 줄기처럼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감기가 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소나기가 좀 억세게 오는 것 같다 윗목에 앉아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3
송경동 '무허가' 무허가 송경동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아 점거해 퇴거 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3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3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시 산 속 절에서 이달(李達) 산이 흰 구름 속에 있어 흰 구름을 중은 쓸지 않네. 나그네가 왔기에 비로소 문 열고 보니 골짜기마다 솔꽃 가루만 흩날리네. 도천사에서 잠자며 이달(李達) 범종이 울자 스님은 절간으로 돌아오고 나그네는 찻상에 자리를 잡네. 비인 산엔 밝�� 달이 가득 비추고 깊은 밤이..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0
이홍섭 '섬' 섬 이홍섭 바다가 기르는 상처 만약 저 드넓은 바다에 섬이 없다면 다른 그 무엇이 있어 이 세상과 내통할 수 있을까 이홍섭의 <강릉, 프라하, 함흥>(문학동네, 1998) 중에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