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29
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28
박후기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박후기 싱크대 옆 선반 위 물이 담긴 유리그릇 속에서 감자 한 알이 소 눈곱 같은 싹을 틔운다 똑똑한 아기 낳는 법,이라고 씌어진 두툼한 책장을 넘기다 말고 고추장 김치 돼지고기가 들끓는 찌개 곁에서 아내가 입덧을 한다 햇볕이 잠시 문밖에서 서성이다 돌아가..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25
김혜수 '챔피언' 챔피언 김혜수 한 사내가 버스에 오른다 왕년에 챔피언이었다는 그의 손에 권투글러브 대신 들려 있는 한다발의 비누가 세월을 빠르게 요약한다 이 비누로 말하자면 믿거나 말거나 세탁해버리기엔 너무 화려한 과거를 팔아 링 밖에서 그는 재기하려 한다 맨 뒷자석의 여자가 단돈 천원으로 한번도 챔..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9
김혜수 '어디 갔니' 어디 갔니 김혜수 잃어버린 무선전화기를 냉동실에서 찾았어 어느날 내 심장이 서랍에서 발견되고 다리 하나가 책상 뒤에서 잃어버린 눈알이 화분 속에서 발견될지 몰라 나는 내가 무서워 앞마당에 나왔는데 무얼 가지러 나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괜히 화초에 물이나 주고 시든 잎이나 떼는 그,..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9
곽재구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 연화리 시편 9 곽재구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곽재구,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3
곽재구 '沙平驛에서' 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3
마츠오 바쇼오 '눈' 눈 마츠오 바쇼오 술을 마시면 더더욱 잠 못 드네 눈 내리는 밤 (해설) 한밤중에 소리없이 쌓이는 눈! 말동무 하나 없이 혼자 오도카니 암자에 앉아 있으려니 겨울밤의 적막감을 견디기 힘들다. 술이라도 마시면 잠이 잘 올까 해서 한 잔 두 잔 들이켜봐도 천 갈래 만 갈래의 상념에 머리는 더욱 맑아질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1
박정만 '종시終詩' 종시終詩 박정만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박정만 유서시집, <꽃지는 저녁은 바라보지 말라>(큰산, 2004) 중에서 나는 겨우 술로써 생명을 지탱하고 있었다. 몸은 거의 완벽한 탈진 상태였고, 정신은 기화하는 액체와도 같이 제풀에 흐물거렸다. 새삼 사는 일이 눈물겹게 생각되었지만,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1
최성민 '사랑의 나무' 사랑의 나무 - 도원동 연가 1 최성민 매서운 동장군의 심술이 도원동 고개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온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가지가 반듯하고 뿌리가 튼튼한 교목들은 어깨를 활짝 펴고 시베리아의 칼바람과 맞서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그러합..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