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단풍 내장산 단풍 최 정 방심한 채 입산했다가 벌 받았는지 가을이면 나도 모르게 며칠씩 앓아누워요 봄꽃 지면 아프더라도 새싹의 간질거림에 싱그러워졌는데 내장산 단풍은 그냥 붉어서 아파요 생의 마지막 불꽃처럼 타올라 숨이 막혀요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나이테 나이테 최 정 당신이랑 한 십년 같이 살았습니다 바람결에 그리움을 엮듯 내게로 와 단단히 고치 틀고 있던 당신 그것도 모르고 한 십년 등 돌렸습니다 사랑은 나이테가 없습니다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방들에 대한 맹세 방들에 대한 맹세 최 정 빨간 펜으로 눌러 쓴 ‘인내’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책상 앞에 붙어있던 고1 하숙방은 도심에 물드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최루가스 묻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숨겨 놓았던 대학 1학년, 따뜻한 방에서 생리통이 불규칙적으로 지나갔다 지붕이 낮은 자취..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첫눈 첫눈 최 정 밤사이 찾아오신 첫눈 언 몸 녹이시는 한낮 볕 잘 드는 창문 아래 모여 앉아 비둘기들 졸고 있네 콜록거리던 골목길도 잠시 기침을 멈추네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세 끼니 세 끼니 일용할 양식1 최 정 밥 한 공기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 베지밀 한 컵 날달걀 하나 알약 한 움큼 적막함 한 사발 세 끼니 동안 일용할 아버지의 양식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목련 목련 최 정 터지기 직전의 팽팽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목련나무 아래 앉아 듣는 빗방울 소리 하얀 그리움의 알갱이 터질듯 거칠어진 빗방울 소리 목련보다 내 그리움 먼저 피어날까 서둘러 우산을 펴네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정림사지오층석탑 정림사지오층석탑* 최 정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자 했건만 불치병처럼 사랑에 감전될까 나는 늘 뒷걸음치며 살았구나 * 부여 정림사지에 있는 백제 말기의 화강암 석탑 ≪내 피는 불순하다≫(우리글, 2008)에 수록됨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천년의 비밀 천년의 비밀 최 정 왜 숨 가쁘게 이곳까지 달려왔냐고 묻는다면 젖무덤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커다란 젖무덤 같은 무령왕릉 둥글고 부드러운 선 하염없이 바라본다 - 여자의 젖은 무덤일까 - 절정의 그 순간, 얼굴 묻고 싶은 아늑한 곳일까 - 죽어도 좋은, 죽어서도 못 잊는 사랑 같은 것일..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나무에게 묻는다 나무에게 묻는다 최 정 바닥난 청춘처럼 메마른 겨울나무에게 묻는다 기름 낀 뱃가죽에도 꿈은 유효하냐고 털장갑 끼고 목도리 동여매면서 종종걸음 치는 출근길에도 꿈은 따뜻하냐고 알몸으로 선 겨울나무에게 묻는다 그렇게 다 버리고 한 세상 찬바람 맞고 홀로 서야 새잎 돋는 거냐..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
여자의 꽃 여자의 꽃 엄마의 꽃1 최 정 장날마다 읍내 버스에 실려와 뜰 앞에 줄지어 선 화분들 날씨 따라 오락가락하는 관절염처럼 뜰 앞을 부지런히 오가는 화분들 간지러운 햇살에 몸 비틀며 꽃들이 피어나네 주름살 저승꽃처럼 피어나네 엄마의 발그레한 볼에도 꽃이 피네 절대 시들지 않을 일.. # 창작시 - 최정/부평동 시절 시(1999-2009) 2010.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