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집 할아버지 돌담집 할아버지 최 정 지푸��기 너저분한 외양간 늙어빠진 누렁소 바동대던 밤 할아버지 잦은 기침 끊어지고 어둠 흘러 다닌 무서리 돌담에 말라붙은 호박넝쿨 하얗게 피웠다 개울 너머 공장 바라볼 때면 담배 연기 길어지던 할아버지 마른 풀 수북한 길 지나 상여는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갔다 .. # 창작시 - 최정/대학 시절 시(1992-1996) 2010.12.04
외딴집 외딴집 최 정 척박한 도시 냄새 쫓기고 쫓기다가 찾아든 마을 어귀 장가들면 하나 둘 떠나 조용한 회관 공터 허름하게 걸린 `농산물수입개방반대` 저녁놀 입은 지붕 아래 졸음에 겨운 누렁이가 짖자 얼른 반기는 어머니 주름진 웃음 막걸리 서너 잔에 사람은 배짱으로 사는겨 목청 높이던 아버지 센 머.. # 창작시 - 최정/대학 시절 시(1992-1996) 2010.12.04
수몰지구 수몰지구 미루나무 최 정 학교 끝나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길가에 늘어선 키 큰 미루나무들이 일제히 베어졌다 굵은 밑둥치들만 덩그러니 줄지어 있었다. 미루나무 아래 뙤약볕 식히고 소나기 피하면서 학교가 마냥 좋았던 옆집 동무와 나. 우리가 그런 것도 아닌데 휑한 그..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30
첫눈 첫눈 최 정 그대는 알고 있었나요 취중 진담이라도 마음 내보이고 싶어 쉽게 취하지 못하는 술을 자꾸 마시면서 시간은 또 자꾸 가고 취한 사람들 하나 둘씩 집으로 가는데 어느덧 허름한 술집은 여러 번 바뀌어 희뿌옇게 밝아오는 구석진 의자에 앉아 이젠 둘만 남아 더는 넘어가지 않는..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30
귀 잘린 자화상 귀 잘린 자화상 최 정 고흐의 귀는 알고 있었을까 잘려나간 순간, 영원히 기억된 것을 고흐의 영혼이 완성된 것을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30
누구나 한번쯤 누구나 한번쯤 최 정 누구나 한번쯤 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은 있다 나도 이제 평균 수명에서 절반쯤 살았다 싱싱하게 튕겨 올라 겁 없이 빛나던 청춘 더 너그러워져야겠다 스스로 빛나지 않아야겠다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29
오체투지 오체투지 최 정 노랗게 떨어진 은행잎 무심코 깔고 앉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렇게 순한 개의 이름이 오체(투지)란다 어쩌자고 주인은 강원도 홍천 산골 낮은 지붕을 지키는 개에게 저리 무거운 이름을 지어준 걸까 두 무릎과 팔꿈치 심지어 이마까지 온전히 땅에 대 본적 없는 이..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29
태풍의 꼬리 태풍의 꼬리 최 정 도시의 일상을 한 판 뒤집었다 수도권 복판을 헤집고 간 태풍이 남긴 꼬리를 쫓듯 산에 오른다 나무가 이리저리 꺾이고 뿌리째 뽑히고 태풍의 분노 선명하다 아직 망설임으로 흔들리는 나는 한 판 제대로 뒤집어지지 못했는데 심장 복판을 헤집고 들어와 태풍의 꼬리..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29
월드컵 월드컵 최 정 평소 축구라고는 관심도 없다가 탁상 달력에 경기 일정을 빼곡 메모까지 해놓고 아프리카 땅 남아공을 상상하며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나는 월드컵 채널을 고정시킨 채 여름 한 달이 간다 스포츠는 마약이라더니 90분 승부의 짜릿한 쾌감과 승자 패자의 엇갈린 운명에 ..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29
평상에 앉아 평상에 앉아 최 정 건드리면 무너질 듯 노쇠한 외딴집 지팡이에 기댄 엄마와 낡은 평상에 나란히 앉아 멀리 아랫마을 바라본다 아버지 가시고 이가 다 빠진 엄마와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졌다 그냥 함께 같은 풍경을 오래오래 바라볼 뿐이다 쓸쓸하냐고 서로 묻지 않았다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