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沙平驛에서' 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3
마츠오 바쇼오 '눈' 눈 마츠오 바쇼오 술을 마시면 더더욱 잠 못 드네 눈 내리는 밤 (해설) 한밤중에 소리없이 쌓이는 눈! 말동무 하나 없이 혼자 오도카니 암자에 앉아 있으려니 겨울밤의 적막감을 견디기 힘들다. 술이라도 마시면 잠이 잘 올까 해서 한 잔 두 잔 들이켜봐도 천 갈래 만 갈래의 상념에 머리는 더욱 맑아질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1
박정만 '종시終詩' 종시終詩 박정만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박정만 유서시집, <꽃지는 저녁은 바라보지 말라>(큰산, 2004) 중에서 나는 겨우 술로써 생명을 지탱하고 있었다. 몸은 거의 완벽한 탈진 상태였고, 정신은 기화하는 액체와도 같이 제풀에 흐물거렸다. 새삼 사는 일이 눈물겹게 생각되었지만,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11
최성민 '사랑의 나무' 사랑의 나무 - 도원동 연가 1 최성민 매서운 동장군의 심술이 도원동 고개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온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가지가 반듯하고 뿌리가 튼튼한 교목들은 어깨를 활짝 펴고 시베리아의 칼바람과 맞서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그러합..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09
최성민 시인의 2번째 시집,『도원동 연가』 "흔하게 접하게 되는 하찮은 소재를 통해 생의 단면을 계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최 시인의 형상화 능력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다. 그를 가리켜 일상성의 깊이를 파헤쳐 감동적으로 그리는 서정적 리얼리즘의 화가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 이가림(시인, 인하대 명예교수) "머리보다는 .. # 여러 짧은 글/그냥, 둘곳없는 이야기들 2011.01.08
정호승 '결빙' 결빙 정호승 결빙의 순간은 뜨겁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 강 도도히 흐르는 강물조차 일생에 한번은 모든 흐름을 멈추고 서로 한몸을 이루는 순간은 뜨겁다 정호승, <밥값>(창비, 2010) 중에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06
해와 달이 뜨고 지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최 정 해가 뜨고 지는 길 따라 싹 틔우고 가지 뻗으면 될 것을 무엇을 바라 조급하게 꽃 피우려 했나 강물을 거슬러 기진맥진 앞서가려 했나 달이 뜨고 지는 길 따라 땅에 몸 누이고 잠들면 될 것을 무엇을 바라 화려한 불빛 쫓아 억지로 불 밝혀 살려고 했나 해와 달이..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1.01.04
생매장은 싫어요 생매장은 싫어요 최 정 밤마다 꿈에 시달려요, 구덩이에 던져져 생매장 당하는 악몽을 꾸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없어요,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서 숨이 막혀요, 차라리 목을 졸라 주세요, 아니 단번에 죽을 수 있게 전기 충격을 주세요, 독약을 구해 주세요, 차라리 아우슈비..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1.01.03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02
박노해 '괘종시계' 괘종시계 박노해 안데스 고원의 원주민 부족은 여명이 밝아오면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동쪽을 향해 절을 하며 기도를 한다 파차마마여, 오늘도 태양을 보내주소서 너무 오래 구름이 끼고 알파까가 병들고 감자 흉작이 드는 것도 신에게 바치는 효성이 모자란 탓이라고 그리하여 날마다 태양이 뜨는 것..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