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의 시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이 될 것이니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백범이 통일정부 수립 협의차 북행하기 전에 쓴 서산대사의 시라고 한다. 리영희의 서재에는 오래 전부터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31
떠돌이 식물 떠돌이 식물 최 정 나는 식물이다 태양을 안아 대기와 사랑 나누고 땅의 젖줄 빨아올려 숨을 쉬는 식물이다 그러나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떠돌이 식물 지구가 커다란 부레를 펼쳐 광활한 우주를 주유하듯 나는 지구에 올라타 몸통을 도시락처럼 싸들고 날마다 날마다 죽을 때까지 떠.. # 창작시 - 최정/2010-2012년 시 2010.12.24
안현미 '내 책상 위의 2009' 내 책상 위의 2009 안현미 그림과 음악과 호찌민 평전이 있다 먼지가 두껍게 앉은 스탠드도 있다. 까망도 있다 의무감도 있다 최선을 다해보려 낑낑대는 나도 있다 없는 것들까지 있다 밤도 있다 거울도 있다 아킬레스건도 있다 꿈도 있다 21세기가 있다 100명의 소녀들에게 아침을 나눠주는 당신이 있다..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21
박영근 '탑' 탑 박영근 저 탑이 왜 이리 간절할까 내리는 어스름에 산도 멀어지고 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지고 수백년 시간을 거슬러 무너져가는 몸으로 천지간에 아슬히 살아남아 저 탑이 왜 이리 나를 부를까 사방 어둠속 홀로 서성이는데 이내 탑마저 지워지고 나만 남아 어둠으로 남아 문득 뜨거운 이마..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20
박영근 '연평도의 말' 연평도의 말 박영근 저 바다가 감추고 있는 뜨거운 물길 하나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부두는 비상등 불빛으로 스스로 제 몸을 묶어 집총자세로 며칠째 말이 없고 어린 칠산바다에서 억센 파도를 배우고 황금색으로 단단해지는 비늘의 바다 서산 태안을 지나 바람 잔잔해지는 한저녁쯤에 내 깊은 곳에..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20
김진경 '그애의 백제 미륵반가사유' 그애의 백제 미륵반가사유 김진경 이제 여중학교짜리 애가 남자애와 살림을 차렸는지 찾아간 산동네 단칸방 앞에서 불러도 대답은 없고 방문을 여니 희미하게 비쳐드는 햇빛 속 옷궤짝 위에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다 슬퍼하는 겐지 무슨 비밀스러운 걸 알았다는 겐지 빙긋이 웃는 솜털이 보송보송..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9
허 연 '그날도 아버지는' 그날도 아버지는 허 연 낮술에 취한 아버지는 밥상을 엎고 병을 깨어들었다. 더러운 자식들, 우리가 왜 이래야 되냐고. 어머니는 까무러치듯 쓰러졌고 비가 내렸다. 비명과 함께 달려온 옆집 숙부가 아버지를 가로막았다. 형님 왜 이러세요, 나이 생각을 하셔야지요 나이를. 아버지는 4라운드짜리 권투..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9
이정록 '서시' 서시 이정록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이정록,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문학동네, 1994) 중에서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9
강성은 '세헤라자데' 세헤라자데 강성은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 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8
박후기 '채송화' 채송화 박후기 1 무너진 집안의 막내인 나는 가난한 어머니가 소파수술비만 구했어도 이 세상에 없는 아이 구석진 울타리 밑에서 흙을 먹으며 놀아도 키가 자라지 않아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2 엄마는 동생을 또 지웠다 여전히 나는 막내다 3 회를 앓는 내 얼굴은 자주 시들었다 태양을 벗어나기 .. # 시 읽기/좋은시 읽기 2010.12.17